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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장헌 기자
  • 기사등록 2019-03-24 09: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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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은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 사회과학자라고 소개되고 있지만, 더 나아가 앞의 셋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에서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경제학이나 철학만이 아니라 정치학, 종교학, 여성학 등 다양한 분야에 정통했기 때문이다. 또한 밀이 어릴 때 아버지인 제임스 밀(1773~1836)로부터 받은 교육은 영재 교육의 모범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문예출판사에서 박홍규 교수의 번역으로 출판한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은 이처럼 위대한 사상가이자 실천가이기도 했던 존 스튜어트 밀이 자신의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영재 교육부터, 다른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만의 사상을 만들어가는 과정, 인생의 동반자이자 여성 해방에 대한 시각을 일깨워준 해리엇 테일러와의 만남, 점진적 사회주의자로서의 사유를 담아내고 있다. 아버지의 독서 교육과 토론, 밀이 받은 영재 교육밀의 아버지인 제임스 밀은 경제학자이자 철학자로서, 벤담의 ‘백지설(theory of the tabula rasa)’의 영향을 받아 아들인 밀의 교육을 이끌었다. 제임스 밀은 자연과학과 고전 중심으로 교육했고, 밀은 논리학과 경제학, 역사학, 철학, 자연과학을 읽음으로써 사물과 인생의 목표에 대한 통일된 관념을 형성할 수 있었다. 보통 천재 교육이 사회교육이나 실천교육을 결여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는데, 제임스 밀은 주입식 암기가 아닌 밀이 스스로 독서하며 요약과 비판을 하게 했고, 아버지인 자신과 질의응답을 통해 이해력을 더욱 깊이 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이끌었다. 이러한 교육은 개성교육이라는 점에서 진취적이었다. 

밀은 열여섯 살이던 1822년부터 신문과 잡지에 투고하기 시작했다. 열일곱 살에 쓴 글에서 표현의 자유를 논한 데서 36년 뒤인 쉰세 살에 쓰는 《자유론》의 씨앗을 볼 수 있다. 밀은 열일곱 살에 동인도회사에 취직해 동인도회사가 폐지된 1858년까지 평생 근무한다. 밀은 자신이 평생 근무한 동인도회사의 인도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을 뿐 아니라 영국의 제국주의 지배도 정당화한다. 그는 유럽을 진보적 세계, 비유럽을 정체된 세계로 보고, 유럽-영국인을 인류 전체 진보의 선구자로 본 당시 대영제국의 역사관을 공유했다. 밀의 친구였던 존 테일러와 결혼한 사이였던 해리엣은 정치에 대해 급진적 관점을 가지고 일찍이 여성의 권리를 지지한 유리테리언의 성직자 윌리엄 폭스의 영향을 받아 여성 문제와 철학 등에 관심이 많았고 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남편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해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을 꾸려나가던 중, 자신을 한 사람의 동료로 대우해준 밀과의 만남은 인생의 새로운 전환을 가져왔다. 두 사람은 결혼과 여성의 권리라는 주제들로 쓴 에세이를 교환하며 서로에 대한 우정과 사랑을 키워갔다.

밀은 권력의 집중, 사회의 획일화, 감시 사회화 속에서 인간이 자동인형으로 변해 자유의 살해자로 등장하는 것을 우려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밀은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고, 저항하는 독립된 개인을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밀의 주장에 대해 한계나 인간을 과도하게 합리적으로 보았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지만, 도리어 편견, 열등, 집단적 하향화에 억눌려 차별받은 사람들에 주목하고, 그들이 가져야 할 가장 본질적 권리가 박탈되었다고 항의한 《자유론》의 주장에 다시 한 번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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