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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빠이 이상용이 선택하고 극찬(極讚)한 토탈스위스 '핏솔루션' - 코리아 정통 어벤져스(Avengers)가 사랑한 토탈스위스코리아(주) - ‘건강한 삶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자부(自負)하는 철인(鐵人) 이상용
  • 정필중 편집국장
  • 기사등록 2019-10-14 00:19:08
  • 수정 2024-03-17 08: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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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스위스코리아(주) 송국주 한국사장과 철인(鐵人) 뽀빠이 이상용의 상봉


서울-‘건강한 삶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자부(自負)하는 철인(鐵人) 이상용 

대한민국의 유명 방송인이며 '뽀빠이'라는 시그니처(SIGNAURE)로 잘알려진 철인(鐵人) 이상용(李相瀧)이 토탈스위스코리아(주)의 송국주 한국사장과 남다른 인연(因緣)을 과시(誇示)하며 평생(平生)을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 하였는데 두 사람 모두 학군장교(R.O.T.C)로 전역한 선배와 후배 사이로 구국(救國)의 간성(干城)임에 틀림없다. 세대(世代)를 아우르며 오뚜기 인생을 살아온 뽀빠이 이상용(李相瀧)은 지나온 50여 년 동안 ‘600여 명의 심장병 어린이를 수술’하게 도와준 그야말로 초아(超我)의 봉사(奉仕)를 몸소 실천한 인물(人物)이며 반세기(半世紀)가 넘는 행사 경력을 보유하고 있는 전문 방송인(放送人)이다. 최근에 할리우드(Holly wood) 액션 영화의 주종(主從)을 이루는 어벤져스(Avengers)영화가 범 세계적으로 대세인데 대한민국 군인들의 우상이며 명 사회자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어벤져스(Avengers) 뽀빠이'의 실존 인물이 바로 철인(鐵人) 이상용이라는 것은 국민 누구나 공히 인정(認定)하는 사실이다. 철인(鐵人) 뽀빠이 이상용이 선택한 토탈스위스코리아(주)


'연약(軟弱)한 여인(올리브)을 따라 다니며 온갖 못된 짓을 일삼고 괴롭히는 악당(惡黨) ‘부르투스’를 눈여겨 보다가 캔(CAN:깡통)에 든 시금치를 먹고 불끈 솟아오른 힘으로 단 한방에 때려 눕히는 ‘뽀빠이’가 주는 의미는 사회적 약자(社會的弱者)로 활동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청소년(靑少年)과 서민(庶民)들에게 꿈과 희망(希望)을 키워주는 만인의 영웅(英雄)'으로 각인되어 있으며 진정한 어벤져스(Avengers)로 시대(時代)를 초월(超越)하여 풍미(風靡)되며 30, 40, 50, 60 세대(世代)에 폭 넓게 회자(膾炙)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21세기 건강식품의 핵(核)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토탈스위스코리아(주)의 캔(CAN:깡통)에 들어있는 자연 건강식품 ‘핏솔루션’과 너무 흡사(恰似)하다는데서 착안(着眼)한 송국주 한국 사장비상한 관심(關心)에서 전격적(電擊的)으로 이루어진 금 번 선.후배간의 만남은 토탈스위스 건강식품의 높은 품질에 기반(基盤)을 두고 이루어졌다는 점(點)에서 다시 한 번 ‘한 잔의 기적’으로 불리는 ‘핏솔루션’이 지닌 의미(意味)를 되새겨 보게 한다. 강철(鋼鐵)같은 이상용(李相瀧)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出身)이다. 뽀빠이라는 수식어(修飾語)로 평생을 살아오며 건강미(健康美)와 정의(正義)의 사도(師徒)로 불리는 이상용은 어려서 “죽지않기 위해 운동(運動)을 했다”고 한다. 실제(實際)로 이상용은 70대 중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람한 몸매를 유지(維持)하고 있다. 건강미(健康美)의 상징(象徵)인 철인(鐵人) 이상용을 보면서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건강하게 태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상용은 갓난아이 때부터 목숨이 붙어있는 것 자체가 기적(奇蹟)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지금 이상용이 ‘건강예찬론자(健康禮讚論者)’가 된 것 또한 죽지않기 위해 운동(運動)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뽀빠이 이상용은 저서(著書)를 통해 자신을 표현(表現)하기를 ‘기적을 뛰어넘은 삶’이라고 말하면서 “어머니가 나를 임신했을 때 아버지가 있는 백두산까지 걸어갔다. 그렇게 간 후 다시 백두산에서 부여까지 임신한 몸으로 밥도 제대로 못먹고 되돌아 왔다.”고 말하며 태어나기도 어려웠던 당시 상황을 모사(模寫)했다. 이어 이상용은 “겨우 태어났지만 하도 못먹어 울지도 못하고 아파서 강보(襁褓)에 싸여 있을 때 외삼촌들이 내가 있으면 동생에게 짐이 되겠다고 생각해 나를 근처 토끼장에 묻었다.”는 충격적(衝擊的)인 고백(告白)을 하였다. 외삼촌(外三寸)의 손으로 생매장을 당할뻔 한 것이다. 이상용의 말에 따르면 “그 장면을 우연히 본 12살 난 이모(姨母)가 나를 구해 산으로 도망갔다.”며 극적(劇的)으로 목숨을 보전(保全)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무사히 숨이 붙어있는 상태에서 구(求)해졌지만 이상용의 목숨이 안전하다고 담보(擔保)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당시 마을 사람들은 이모(姨母)와 이상용이 모두 죽었다고 판단(判斷)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날 두 사람은 무사히 발견돼 목숨을 겨우 부지(扶支)할 수 있게 되었다. 이상용은 그일이 있는 후로 “다섯살 때까지 줄곳 아파 누워있었으며 10살 때까지 앓아보지 않은 성인병(成人病)이 없을 정도였다.”고 눈물 젖은 사연을 토로(吐露)하였는데 심장병 어린이를 남다르게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아마 어렸을 때 본인이 겪은 시련(試鍊)때문인 것으로 미루어 짐작(斟酌)하게 한다. 이후로도 가방을 들 힘 조차 없어서 초등학교 때까지 부친(父親)이 매일같이 가방을 들어주면서 학교를 왕래(往來)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상용은 그때를 “정말 질기게 살아온 기구한 삶이다”고 표현(表現)하고 있다. 지금의 이상용이 ‘철인(鐵人)’과 ‘뽀빠이’라는 별칭(別稱)으로 불리면서 건강미(健康美)의 대명사(代名詞)가 된 것은 그야말로 ‘인간승리’라고 볼 수 있다. 이상용의 노력과 끈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50여년이 넘게 운동을 해왔지만 지금도 잔병 치레가 많은 것은 어렸을 때 힘든 일을 겪었기 때문”이라는 말에서 확인(確認)할 수 있다. 뽀빠이 이상용은 “우연히 12살 때 아령(啞鈴)을 발견(發見)하고 운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며 운동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이유(理由)를 나열(羅列)하였다. 그리고 고등학생(高等學生)시절부터 보디빌더(Body builder)로 활약(活躍)하였으며 고려대학교 재학생 시절에는 드디어 ‘미스터 고려’에 선발되기도 하였다. 고려대학교 농과대학 임학과를 졸업한 그는 학군(學軍:R.O.T.C)장교로 임관(5기)하여 장교(將校)의 신분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義務)중 하나인 국방의무를 수행(遂行)하였고 군 복무시절의 병과(丙科)는 기갑(機甲)으로 특수전 교육을 우수하게 마친 훌륭한 인물(人物)이다.

'핏솔루션'의 탁월함에 엄지척으로 감탄하는 뽀빠이 이상용 


대한민국 육군 중위(中尉)로 예편(豫編)한 후에 외판원(外販員)등으로 생계를 꾸려가다가 1971년 CBS 기독교방송(基督敎放送)에서 MC로 방송 일을 하였고 1973년 지인(知人) 변웅전의 소개를 통해 MBC의 <유쾌한 청백전>으로 방송(放送)에 데뷔하여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進行)하게 되었으며 특히 1989년부터 그가 장교(將校)로 군복무(軍服務)를 한 점이 인정(認定)되어 MBC<우정의 무대>의 MC로서 발탁(拔擢)되었으며 당시(當時)에 “뒤에 계신 분이 어머니가 맞습니까? 예! 제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라는 유행어(流行語)를 남긴 바 있다. 이처럼 눈물의 상봉(相逢) 장면을 지켜본 장병(將兵)과 시청자(視聽者)들까지도 말없이 눈물짓게 했던 TV프로그램 ‘우정의 무대’(1997년 종영)의 대표적인 명장면을 연출한 사회자(司會者)로 명성(名聲)을 떨치며 종횡무진(縱橫無盡)으로 맹활약하였다. 당시에 그는 국민 MC로 불릴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 선행으로 군인(軍人)과 국민(國民)들에게 끝없는 사랑을 받은 바 있으며 연예인(演藝人)으로 활동하던 중 사회봉사(社會奉仕)에 뜻이 있어 1991년에중앙대학교 사회대학원 사회복지학을 전공(專攻)하여 석사학위(碩士學位)를 취득(取得)하기도 하였다. 선행(善行)을 천직(天職)으로 알고 평생을 자선사업(慈善事業)으로 일로매진(一路邁進)하는 삶을 살기 위한 각오(覺悟)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1996년 11월, 이상용은 심장병 어린이 수술기금을 유용했다는 혐의(嫌疑)로 검찰(檢察)로 부터 수사를 받게 된다. 시샘이 많은 ‘운명(運命)의 여신(女神)’이 그를 가만두지 않은 것이다. 그 시절 KBS TV 프로그램 <추적 60분>의 보도(報道) 등에 의해 잘못 보도되면서 <우정의 무대>진행에서 하차(下車)를 하게 되는 등 ‘일생일대(一生一代)의 최대고비(最大苦悲)와 시련(試鍊)을 겪으면서 방송(放送)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하늘의 뜻으로 1997년 2월 무혐의처분(無嫌疑處分)을 받게 되었으나 이미 그는 너무나 큰 상처를 겪으면서 한 쪽 눈마저 실명(失明)의 위기에 처할만큼 안타까운 상황을 겪어야만 했다. 이토록 처참한 시련을 겪고 있을 당시, 잠시 한국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맞게 되는데 이유인 즉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김동길 교수 등으로부터 연락(連絡)이 와서 남겨준 말이 “눈(雪)이 오는데 억지(抑止)로 눈을 쓸어내려 하지말고 조용히 떠나 있어라! 그래서 봄이 오면 눈(雪)은 녹고 너는 자연스럽게 회자(膾炙)되게 된다.”는 말을 듣고 그길로 미국(美國)으로 떠나게 되었고 하루에 14시간 30분씩 관광버스를 타면서 가이드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또 한 번 비통(悲痛)한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상용의 말에 따르면 “다름이 아니라 아버지가 저(이상용)의 억울함을 호소(呼訴)하기 위해 대전역 광장에서 역사(驛舍)를 오가는 행인(行人)들에게 무고(誣告)를 알리는 전단지(傳單紙)를 돌리는 과정에서 돌아가시게 됩니다.” 라고 말한다. 그야말로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언빌리버블 스토리(Unbelievable Story)가 아닐 수 없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충청대학스포츠외교학과 겸임교수 출강(出講)을 계기(契機)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고 <뽀빠이 이상용의 폭소열차>라는 만담(漫談)이 담긴 녹음 테이프의 판매(販賣)로 생계를 연명(延命)하면서 어렵고 힘든 시절에도 좌절하지 않고 2011년 11월 가톨릭출판사의 ‘고통과 아픔을 기도로 극복한 문화 예술인의 이야기’를 저술(著述)까지 해내고 만다.<슈퍼스타>공저

뽀빠이 이상용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나이'라고 불린다. 경기 침체로 행사가 대폭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행사가 수십개가 잡혀 있다. 그에게는 약속(約束)은 생명(生命)과 같아서 평생을 '펑크' 한 번 내본 적이 없다. 이상용의 인기 비결은 바로 성실(誠實)에 기인(起因)한다. 한 번 한 약속(約束)은 어떤 상황이 와도 단 한 번을 어겨본 적이 없다. 심지어 20년 넘게 '퀵 서비스'를 이용해 행사장을 다녔다고 한다. 한번은 김포공항에서 서울 중심가의 호텔까지 25분 만에 주파(走破)한 적도 있다. 지난 80년부터 이상용과 함께한 '퀵서비스맨'이 증언(證言)을 한다. 뽀빠이 이상용은 지난 50여년간 2,000여 회가 넘는 기업체 행사에 MC로 활동을 하였다.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성격” 때문이다. 인기 비결은 1인 다역이 가능한 만능 엔터테이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3만개가 넘는 레퍼토리의 만담(漫談)을 보유하고 있다. 

토탈스위스코리아(주) '핏솔루션'


이상용은 언제 어느 장소에도 만담(漫談)을 준비하여 자유자재(自由自在)로 구사할 수 있다. 특히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야한 농담을 능청스럽게 던지는 모습(模襲)은 자지러질 정도이고 그의 진행 솜씨로 인해 어떤 관객은 너무 웃다가 턱이 빠진 적도 있다. 다행히 현장(現場)에 있던 접골사의 응급 치료로 구급차(救急車)가 오는 불상사(不祥事)는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경기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업체들은 '인기가수'를 초대하지 못해도 이상용 덕분에 기대 이상의 재미있는 행사를 치를 수 있다. 두 시간 내내 트로트와 만담(漫談) 그리고 개인기 등 각종 레퍼토리를 펼치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感歎)을 자아내기에 충분(充分)하다. 이상용은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발매를 시작한 <폭소열차 시리즈>는 5집까지 나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없어서는 안될 품절(?)상품으로 인기절정에 있으며 세계 카톨릭계의 큰 인물로 추앙받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그의 만담(漫談)에 반하여 개인적으로 여러 차례 초대(招待)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상용은 봉사에 관한 한 중단(中斷)없는 전진(前進)으로 최근까지 '할아버지, 할머니 돋보기 나눠주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수년(數年)에 걸쳐 시력(視力)을 잃은 4,000여 명의 노인(老人)들에게 돋보기를 선물해 온 것으로 확인된다. 정작 본인은 왼쪽 눈의 시력을 잃어 돋보기를 써도 사물(事物)을 구별(區別)하기 힘들 정도이다. 하지만, 평소 뽀빠이 이상용을 아끼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제안(提案)을 선뜻 수용하여 '자신의 몸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자'고 결심(決心)한 것이다. 이상용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웃음이야 말로 건강한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말을 한다. "이러한 일은 지난 90년대 초반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 600명을 수술해 준 '불우이웃 돕기'의 연장선상(延長線上)의 일 일뿐"이라고 단호(斷乎)하게 일갈(一喝)하였다. 이 또한 토탈스위스코리아(주) 송국주 한국 사장이 추구하는 봉사(奉仕)의 일념(一念)과 괘(卦)를 함께 하는 부분이며 앞으로 토탈스위스의 문화와 협력하여 이루어 낼 남다른 활약(活躍)이 기대가 된다. 지금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하루 스케줄을 점검하며 600회의 근육운동(벤치프레스)을 하고 5킬로 미터를 달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오뚜기 인생 뽀빠이 이상용’은 언젠가 <우정의 무대>가 다시 펼쳐져 군 부대를 위문 방문하여 후배(後輩)들을 격려(激勵)하는 당당(堂堂)한 모습이 토탈스위스와 함께 이루어내기를 간절하게 소망(所望)한다.

재도약을 외치는 뽀빠이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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